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2차 괌 전투 (문단 편집) === 상륙 직후 (7.21~22) === 미군은 해병 3사단을 주공으로 하여 괌의 수도 아가나 서쪽에 위치한 서해안의 아산(Asan) 해변에, 제1해병여단은 역시 섬의 서해안이지만 남쪽에 있는 아갓(Agat) 만으로 각각 상륙하였다. 양 상륙지에서 미군은 압도적인 화력을 바탕으로 순조롭게 상륙, 진격했다. 해병 3사단 아산 해변에서 남진하고, 아갓 만의 1해병여단이 북진하여 합류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리고 예비병력인 육군 77사단은 아갓 만 근처 바다에서 대기하면서 전투 진행 상황을 지켜보면서 휘하 연대전투단을 아갓 만에 상륙시켜 1해병여단의 교두보 확보와 북진을 도울 예정이었다. 일본군도 해안에 다수의 야포와 기관총을 배치하고 강력히 저항하여 미군에 출혈을 강요했으나 화력과 병력의 열세를 이겨내지 못했다. 특히 아갓 만은 일본군이 미군 주력이 상륙해올 곳으로 예상하고 화력과 병력을 집중배치했는데도 상륙 당일에 제대로 털렸다. 상륙 몇 시간만에 해안방어부대들이 괴멸했고, 이 날 밤부터 다음 날인 22일 새벽까지 이 지역 방어부대였던 일본군 38연대장이 직접 지휘한 야습을 감행하였으나 반자이 어택을 수없이 경험해본 미군은 이미 야습을 예상하고 방어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그래도 상륙 당일이라 방어선의 미완성된 부분 등으로 소수 일본군이 침투에는 성공했으나 결과는 뭐 전멸.(...) 오히려 귀중한 전차들까지 야습에 투입했다가 셔먼에게 찍소리도 못하고 털렸다. 아산 해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일본군은 전선의 모든 병력을 긁어모아 총공세를 개시, 상륙 초기라 병력이 부족한 미군을 몰아붙이는 듯 했으나 함포, 함재기, 야포, 기관총이라는 압도적인 화력지원과 급히 추가상륙한 예비부대의 증원으로 그야말로 학살에 가까운 피해를 입고 겨우 패주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